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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즈텍 문명에 대해서

by 스마트 정보세상 2023. 8.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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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즈텍 문명 

삼각동맹 또는 아즈텍 제국 또는 메시카 제국으로 불립니다 

세 개의 나와족 도시국가(알테페틀)인 테노치티틀란, 텍스코코, Tlacopan 연합해 만든 동맹국가입니다 

이들은 1428년부터 1521년까지 에스파냐에 정복자들에게 멸망당한 멕시코 분지와 그 주변 지역을 지배했습니다 

희생된 사람 해골들을 모아놓은 제단.(위키피디아)

 

아즈텍의 어원 

아즈텍이라는 이름은 나와 틀어(아스틀란의 사람)에서 유래되었습니다 Aztecah라는 단어가 원래의 어원이며 이것은 Aztlan이라는 고향에서 온 사람들을 의미합니다 Aztlan은 고향으로 아즈텍 민족의 출발지로 여겨진다고 하나 아즈텍 제국시대에 그들 자신을 멕시카(Mexica)로 불렀습니다 이 이름들은 수도 테노치티틀란의 신화와 연결되어 있습니다 현재의 멕시코 시티가 위치한 지역에 정착되면서 테노치티틀란이 건설되었습니다 다시 말하자면 아즈텍이라는 용어는 나와 틀어에서 비롯한 것으로 Aztlan 지역 출신인 사람들을 가리켰으나  당시 아즈텍 국민들 스스로를 멕시카라고 불렀습니다

 

아즈텍 문명의 역사 

아즈텍 문명의 역사는 14세기부터 16세기 중반으로 알려져 있으며 이는 현재 멕시코 중심부 멕시코시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아즈텍 문명의 역사는 크게 3주요 기간으로 나눌 수 있는데 초기 아즈텍, 아즈텍 중기, 아즈텍 제국시대, 아즈텍 문명의 멸망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1. 초기 아즈텍 (약 14세기 중반)

   1200년에 멕시코 일대를 지배하던 톨텍족이 멸망하고 톨텍의 수도였던 툴라도 폐허가 됨으로써 북방의 민족들이 멕시       코로 이주하게 되는데 이 중 가장 늦게 이주한 종족이 바로 멕시카인 즉 아즈텍인이었다고 합니다 

   그들은 싸움과 전쟁에 능하였고 약탈을 주로 하는 민족이었습니다 그들은 1300년부터 한동한 톨텍족의

   노예로 살아갔으나 나중에 톨텍족의 공주를 살해하면서 늪지 한가운데의 섬으로 이동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던 중 선인장위에서 뱀을 먹 고 있는 독수리를 보았고 그 행동이 신의 뜻이라고

   여기고 그곳에 정착하게 됩니다 1325년 섬 주위에 있는 진흙들을 개척하여 단단한 땅으로 만들고

   테노치티틀란(지금의 멕시코시티)이라는 수도를 건설하게 됩니다 

2. 아즈텍  중기 

    아즈텍 인들은 멕시코지방에 맨 마지막에 정착한 후발주자이나 그 용맹함과 잔인함으로 멕시코 지방의

    지배적인 종족으로 급부상하게 되었습니다 상황이 이런 식으로 흘러가게 되자 테파넥 족이 세운

    도시국가 아스카포찰코는 아즈텍인들을 이용하여 군사적 힘을 강화하려 하였고

    아스카포찰코의 왕 테조조목은 자신의 지배하에 아즈텍인들을 끌어들이는 데 성공하고 조그만

    도시 왕국에서 제국으로 탈바꿈시키게 되었습니다 1426년 테조조목이 세상을 떠나게 되고

    쿠데타가  일어나게 되면서 막스 틀라가 새로운 왕의 자리에 올랐습니다 그러나 얼마 안 가

    막스 틀라가 폭정을 펼치기 시작하자 테노치티틀란과 텍스코코, Tlacopan이 힘을 합쳐

    막스 틀라를 쫓아내기 위한 연합체를 구축하였는데 이 연합체가 바로 삼각동맹 즉

    아즈텍 제국으로 발전하게 됩니다 

3. 아즈텍 제국 

     1440년 테노치티틀란의 몬테수마 1세는 40살의 나이로 이츠코아틀의 뒤를 이어 아즈텍의

     황제로 즉위하였습니다 즉위한 후 테노치티틀란 주변에 위치한 소규모 도시의 왕들은

     모두 제국에 협조적 인물로 교체되었고 조세 제도를 바꾸어 기존의 권력층들 대신에 정복지에

     감찰관을 파견하여 세금을 걷게 하였습니다 각 지역의 왕들에게는 최대한 자기한테서 멀리 떨어진

    영토를 내어 줌으로써 만약 반란이 일어날 시에도 효과적으로 통치할 수 있는 구실을

    마련하게 되었습니다 만약 반란이 일어날 시에는 이를 진압한 후 아예 왕조를 교체하거나

     황제가 보낸 총독을 파견하여 속령으로 만들었습니다 또한 새로운 법령을 만들었는데

     제국과 일반인을 분리하여 교육을 시키게 하였습니다 일반인들은 텔포크칼리라는 국립 학교를 세워

    평민들에게도 기본적으로 종교, 군사적 학문을 가르쳤고 귀족들에게는 칼메칵이라는 고급 학교를 세워 고위 사제

    , 사회 지도층으로서 필요한 교육을 받게 하였습니다  특히 칼메칵에서는 예외적으로 특별히 재능 있는

     평민들도 입학할 수 있었고 특이한 경우지만 평민이 공을 세우고 왕의 자리에까지 오를 수 있기도 하였습니다

     이와 같은 조치는 세계의 어디서도 찾아보기가 힘들었으므로 아즈텍 제국은 전 국민에게 의무적으로 교육을 시킨

     최초의 나라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때  만들어진 아즈텍의 전통 가운데 꽃의 전쟁이라는 것이 있었는데

     당시 인신공양 풍속이 있던 아즈텍 제국에서 신에게 바칠 포로를 구하기 위하여 일으킨 전쟁입니다 

     이 전쟁은 상징적인 모습을 가지고 있었으며 이 전쟁을 통하여 자신들의 역량의 발달, 또는 새로운 포로들을

     구할 수 있었으며 양쪽 지도부 간의 철저한 합의 하에 어떤 사람을 제물로 바칠지도 정하였다고 합니다 

     이 꽃의 전쟁이 대대적인 행사로 자리매김할 수 있었던 이유는 1450년부터 1454년 사이에 일어난 대기근에

     일어났고 그 대기근을 사제와 황제들은 신의 분노라고 여기며 이를 풀어주기 위한 제물을 바치기 시작하면서

    생긴 전쟁입니다  아즈텍 제국은 몬테수마 2세까지 유지되었습니다 

  4. 아즈텍 제국의 멸망 

      아즈텍 제국의 멸망은 16세기 초 스페인의 정복자 에르난 코르테스의 정복원정에 의해 발생하였습니다 

      1519년 에르난 코르테스는 스페인에서 멕시코로 이동하여 아즈텍 제국의 수도인 테노치티틀란을 점령하는 데 

      목표를 정하였고 실행하였습니다 지역부족들과 연합하였고 이러한 연합은 스페인 군사력 사이의 전투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전투와 군사력의 차이가 심했습니다 아즈텍의 군대는 용맹하고 잔인하나 새로운 

      문물을 경험하지 못하였습니다 그리하여 화약을 이용한 총, 대포 등에 적응하지 못하고 공포심으로 이긴 전쟁도 

      허다하였습니다 또한 스페인 원정대는 아즈텍인들에게 여러 중대한 질병을 퍼트렸습니다 그중 가장

      치명적인 질병은 천연두였고 아즈텍인들은 이 질병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하여 대규모 사망하는

     사태로 번지기도 하였습니다 그 후 마지막으로 몬테수마 2세의 코르테스 포획작전 실패로

     인하여 아즈텍 문명의 제국은 멸망하기에 이릅니다

     

       이것으로 아즈텍 문명을 알아보았으며 다음에는 다른 문명을 알아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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